일이 바빠서 드디어 3부를 내는데 이전보다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는 부분은 양해바람 ㅠㅠ

*본인은 현대 짱깨를 청나라 여진족 오랑캐의 후손이자 바퀴벌레로 취급함을 알립니다.
*소설 삼국지연의가 아닌 실제 정사를 기반으로 작성함을 알립니다.

1부 - http://www.ilbe.com/view/11240609729
2부 - http://www.ilbe.com/view/11241142857





1. 끝나지 않은 전쟁.





업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하며, 하북의 수도 '기주' 접수한 조조.

204년 9월, 민심 안정책으로 기주의 권세가들이 토지겸병하는 것에 관한 법을 엄중히하자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다음은 조조가 실제로 기주에 내린 명이다.

'나라나 집안이나 모두 부족함이 아닌, 균등하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이 아니라 안정되지 못함을 근심하는 법이다. 원씨가 다스릴때 호족들을 마음대로 방종하게하고 친척들에게 토지겸병을 하게하니, (원소의 체제가 호족연합체 임을 암시) 

백성들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데도 대대로 세금을 내느라 가산을 팔아도 충분히 명에 응하지 못했다. 이에 백성들이 우리에게 의지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들의 권세가 강성하니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내 이에 세금을 대폭 줄이는 바, 제멋대로 거두지 말 것이며 태수들은 이를 분명히 감찰하라.'


그럼에도 아직 하북의 4개주 중 아직 단 1개주를 접수한 것에 불과했으니,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처럼 한고비 한고비가 토나오는 상황 속에서 다행히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터진다.

원상과 조조가 다투는 사이에 독립할 기회를 엿보던 병주의 고간이 판세가 조조에게 우세하게 흘러가자 아예 병주를 들어바쳐 항복한 것이었다. 

이렇게 조조의 하북 정벌은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한가지 변수가 생겼으니 조조와 동맹을 맺은 원담이었다.



(기주의 동부지역이(빨간색 네모) 송두리쨰 원상에게 넘어간다.)


원상과 조조가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기주 동부를 싸그리 점령하며 미쳐날뛰고 있었다.

또한 중산국(기주 북부)으로 도망간 원상까지 공격해 원상의 무리들까지 흡수하는데 성공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이때 원상의 부하였던 '이부'까지 원담 밑으로 들어가게된다.)

그러면서도 원담은 원상의 부하 장수였다가 조조에게 투항한 '여광'에게 몰래 장군 인수를 건내며 매수를 시도하는 등 조조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 원담도 본격적으로 조조에 대한 대응에 들어간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미 여광은 원씨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여광이 이를 조조에게 고하자 조조가 말했다.





"나는 원담에게 작은 계책이 있을 줄 알았다. 나로 하여금 원상을 공격케하고는 그 틈에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무리를모아 원상이 격파되면 스스로 강성해져 내가 피폐해진 틈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원상이 격파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성하니 무엇을 틈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원담에게 사신을보내 원담을 꾸짖으며 당초, 자신의 아들과 혼인시키기로 했던 원담의 딸을 돌려보냈다.



(추격하는 조조, 달아나는 원담)

이후 원상을 깨뜨린 조조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원담을 공격하니, 원담은 응하지 않고 남피로 달아나는 등 싸움을 계속 회피할 뿐이였다.

그러나 이는 원담의 유인 작전.





빠른 시간 내에 기주를 장악하여 병력이 분산되었던 원담은 각지의 세력을 결집시켜 조조와 전면전을 벌이려했던 것이었다.

한편, 조조가 달아나는 원담을 추격할때 백성들에게 하천의 얼음을 깨는 일을 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 노역을 꺼려 도망간 백성들이 도주한 일이 있었다.

이에 조조가 도망간 백성들이 자수해도 용서하지 말라는 영을 내리니, 이내 도망간 백성들이 다시 돌아와 자수하자 조조가 말했다.




"너희들의 청을 들어주면 내가 영을 어긴게 된꼴이고, 너희들을 죽이면 자수한 자를 죽이는 셈이 되는구나. 깊은 곳으로 돌아가 군사들에게 붙잡히지 말도록하거라."(개인적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일처리라 생각함)

그러나 백성들은 곧 붙잡혔다. (뒷 이야기는 없지만 아마 죽었을 것으로 추측)





그렇게 비극적인 백성들의 희생을 겪어가면서까지 원담 추격에 박차를 가한 조조가 마침내 남피에서 원담과 결전을 벌이게되었다.

하지만 전력을 결집시키는데 실패한 원담이 불리했는데, 그럼에도 어느정도 세력을 모았는지 원담군은 꽤나 강성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상당히 치열했는데, 대낮까지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그 치열함은 조조 자신이 직접 북을 두드릴 정도였고, 그제서야 조조의 병사들이 모두 분발했으며 원담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싸움에서 패한 원담은 달아났으나 원담의 운명도 다했는지 도망 도중에 낙마를 하고 말았으니, 결국 추격하는 조조군에게 사로잡혀 원담과 그 처자가 모조리 처형당한다.

또한 원가를 정치질로 몰락시킨 곽도 일당도 이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편, 원담이 불리하단 사실을 듣고 구원군으로 가고있던 원담의 측근 '왕수'가 뒤늦게 원담이 죽었단 사실을 듣고 크게 통곡하며 조조에게 말했다.





"저는 원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만일 원담의 시신을 거두고 곡을 하게 해준다면 찢겨 죽는다해도 원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조조는 원담에게 곡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처자와 함께 죽일 것이라고 명한 상황이였으나, 왕수의 기개와 충의에 감동한 조조는 이것마저 거절할 수 없었으니 그를 용서해주었다.

그렇게 205년 봄, 기주와 원담의 청주마저 완전히 조조의 손 안에 들어왔다.


2. 뒤집히는 판세.






원상과 원담을 격파하고, 고간의 항복으로 하북 4개주 중에 3개주를 장악하며 마지막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의 유주만을 남겨둔 조조.

진짜 그토록 염하던 하북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더불어,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자 유주의 원씨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으니, 마침내 원희의 부하 '초촉'이 조조에게 항복하자며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르렀다.




(만리장성 밖, 오환으로 달아나는형제)


이때 원상은 원희에게 피신 중이였는데, 조조에게 반격다운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반란으로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며 

이번에는 아예 이번엔 만리장성 바깥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족, *'오환족'에게 망명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몽골계 유목민족이자 당시 한나라에 투항한 민족이였으나, 황건적의 난을 기점으로 크게 세력을 이루었다.

그렇게 유주까지 싸움 한 번 없이 손 쉽게 장악한 조조.






그리고 이제 원씨를 뿌리 뽑기위해 오환정벌을 대대적으로 준비하나 늘 그렇듯 이상하게 일이 잘풀리면 꼭 브레이크가 걸리는게 세상사.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하북을 다시 한번 요동치게 하는 큰 사건이 터져버린다.

바로 항복한 병주의 고간이 반중앙(반조조)정서를 이용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고간의 반란으로 상황은 아이러니하게 조조가 다시 포위당하는 판국이 만들어졌다.)


연전연승하던 조조였으나 바로 이 고간의 항복, 단 한번으로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조가 포위당하는 형세가 만들어졌다

고간의 반란은 상황의 변동에 따른 급진적 반란이 아닌 상당히 깊이 계획된 반란이었으니,

형주의 유표와 결탁하고 조조의 본진인 사례주마저 고간에게 크게 호응한 대규모 반란으로 이는 조조에게 큰 위험이었다.

더군다나 고간의 반란 진압을 위해 보냈던 악진과 이전마저 고간 공략에 실패해버린 상황.






한 쪽이 뚫리니 사방에서 다시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상황이 이리되자 북쪽으로 달아난 원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본래 원소가 끝내주게 외교를 잘 해놓은 탓에 오환족과 원씨와 사이가 굉장히 친밀했으며, 더불어 오환족의 우두머리 '답돈'마저 원씨의 사위였던 탓에,

오환의 힘을 얻은 원상은 다시 유주로 침입했고 원상은 이 과정에서 10만명이 아니고 무려 10만호에 달하는 유주 인구를 얻는데 성공한다.

상황이 다시 엄청난 개판이 되버리는 상황 속에서 조조는 두 개의 전선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바깥의 원상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세력을 빠르게 확장하며 중원을 뒤흔들고 있는 고간의 반란 진압이 먼저였으므로,

조조 자신은 직접 고간을 공격하고 반란이 일어난 사예주에는 하후돈으로 하여금 중앙군을 이끌고 토벌케했다.

사례주가 넘어가면 중원의 서쪽은 고간이 모두 장악하는 상황으로, 고간이 사례주를 먹기 전에 조조는 무조건 이를 방어해야했다.

그러나 내부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은 강하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그 지역 사람 모두가 반란군이 되는 법.

조조 역시 이를 근심하여 순욱에게 말했다.




"서쪽의 제장들은 험준함에 의지하고있는데, 급히 정벌하면 오히려 반란을 불러일으킬 것이오.

특히 사례의 하동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옆에는 강이흐르니 천하의 요지인데, 그대가 나를 위해 훌륭한 이를 추천해주면 그로 하여금 진압케합시다."

순욱이 말했다.




"두기가 좋을 것입니다."

두기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직접 하동에 가려했는데 순욱이 말했다.




"적은 대군을 이끌고 있을 것이오"

두기가 말했다.




"하동에는 3만호가 있으나 모두 반란을 일으키려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우리에게 적대치 않는 자들도 반란자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토벌하지 못한다면 사방에서 호응하여 반란이 평정되지 않을 것이고 반란을 평정해도 민중을 학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수레 한 대에 올라 그들이 생각지 못한 바를 찌르겠습니다. 반란 주동자인 '위고'는 사람됨이 꾀가 있으나 결단력이 없어 필시 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두기는 하동의 반란 주동자 '위고'에게 거짓으로 항복했다.

이때 위고는 명성을 중요하시하는 자였는데,

두기를 죽여도 적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못하고 죽이면 오히려 자신의 명성에 먹칠하는 꼴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두기의 거짓항복을 받아들였다.



(사례 동쪽이 송두리째 반기를 들었을만큼, 고간의 반란은 강력했다.)

그렇게 안쪽에서 두기는 위고를 위하는척하며 반란을 억제하면서도, 

서서히 하동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었고 끝내 하동 지역만이 반란이 확장되지 않은 채, 하후돈의 중앙군 개입을 허용해 사례를 끝내 지켜낼 수 있었다.





더불어 조조마저 고간을 석달 동안 포위하며 거세게 공격을 퍼붇자 더 이상 퍼딜 재간이 없어진 고간은 형주로 달아나나 결국 조조의 부하에게 잡혀 처형된다.

 
3. 오환정벌
  
고간의 배반으로 십년 감수를한 조조.

이제 남은 것은 진짜 원상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을 너머 대군을 이끌고 길 없는 길을 행군하여 적을 공격하는 것은 몹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무제 마저 엄청나게 쌓았던 국부를 흉노 원정으로 모두 탕진했을 만큼,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 이민족을 그 당시 정벌하는 것은 인력과 재력이 상상이상으로 소진되는 일이었다.

조조가 북쪽으로 오환을 토벌하려하자 제장들이 말했다.




"원상은 도망간 적에 불과하고 오랑캐들은 탐욕스럽고 친애함이 없으니 원상이 어찌 이들을 부리겠습니까?

지금 깊이 들어가 정벌하면 유비가 필시 유표를 설득해 허도를 기습할 것입니다."  


곽가가 말했다.




"오랑캐들은 그들이 멀리 떨어져있는 것만 믿고 있으니, 필시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방비가 없음을 틈타 갑작스럽게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소가 백성들과 오랑캐들에게 은혜를 크게 베푼데다가 원상 형제가 생존해있습니다. 하북 4주의 백성들은 단지 강제로 우리에게 굴복한 것이며 은덕이 아직 더해지지 못했습니다.

이를 내버려두고 유표를 친다면 원상은 그의 세력을 다시 결집시킬 것이고 이와 더불어 오랑캐들이 함께 움직인다면 천하가 다시 요동칠 것입니다."

이어 우려되는 유표의 침략에 대해서도 곽가가 확실한 솔루션을 내놓았다.




"유표는 앉아서 담소하기나 좋아하는 인물로 자신의 재능이 유비를 부리기엔 충분치 않아 자신이 유비를 제어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니 우리가 나라를 비워두고 원정해도 염려하실게 없습니다."  


이에 조조가 곽가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실제로 유비는 조조가 북쪽 원정을 간 틈을 타 조조를 칠 것을 유표에게 제안했으나 유표는 이를 듣지않았다. 

그러나 말이 오환 정벌이지 조조는 '험한 길'이란 또 다른 적과 싸워야했으니,





(유성 - 오환 본거지 / 조조의 오환 정벌 진군로)

본래, 조조가 가려던 길은 나름대로 순탄한 길이였으나 마침 비가 많이오는 여름인데다 해안을 따라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홍수로인해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또한 이미 원상군은 이미 요소요소에 군대를 배치해 조조의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으니 조조가 이를 근심했다.

이에 조조가 지역의 관리를 호출하니 '전주'란 자가 길잡이를 자처하며 왔다.

조조가 전주에게 길에 관해 몇가지를 물으니 전주가 말했다.




"이 길은 매년 가을과 여름에 항상 물이가득합니다. 물이 얕아도 수레와 말이 통과하지 못하고 깊다고해도 배로 운행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노룡'이라는 길을 통해 다녔는데, 이미 이 길이 무너져 끊긴지 200년이 되었습니다만, 좁고 작은 지름길이있어 통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적은 승상의 대군이 여기서 나아가지 못하면 철수할 것으로 생각하고있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을 것인바, 우리가 만약 지름길로 나온다면 싸우지도 않고도 적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가 말했다.




"알겠소."

이에 조조가 군사를 인솔하여 돌아가며 물옆 길가에 세워진 큰 나무에 문구 하나를 적었다.

"지금은 여름이라 길이 통하지 않으니, 가을에 다시 진군하리라"

적의 척후가 이것을 보고 조조가 진짜 돌아갔다 생각해 방심하게 되었다.




(노룡새로 추정되는 지역의 모습) 

그렇게 적을 속였다해도 200년간 끊긴 길을 간다는 건 생각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니, 조조가 노룡 길 밖으로 나오자 전주의 말처럼 길이 끊겨져 있었다.

이에 조조군은 훗날 등애가 촉나라 산을 넘을때 길이없어 산을 파고 계곡을 메우며 전진하는 것 마냥 조조 역시 길을 만들며 험한 길과의 전쟁을 이어갔다.





이처럼 죽을 고생을하며 길을 뚫고 유성까지 마지막 200리 길을 남겨두었을때,

그제서야 적들은 조조군이 당도하고 있다는 날벼락같은 정보를 입수한 원상과 원희, 답돈 등 오환족의 우두머리들도 대응하기위해 황급히 수만 기를 이끌고 맞섰다.

그렇게 원상도 이번 기회에 조조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진군을하였고, 조조도 이번 기회에 원씨를 뿌리 뽑기위해 진군하였다.

때는 207년 8월.





조조가 진군도중 백랑산에 올랐을때. 그 둘은 정사에서도 '진짜 갑작스럽게'란 표현을 쓸 정도로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되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마주친 탓에 조조의 본대는 아직 후방에 있어 병사는 적은 반면,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원상의 무리는 굉장히 많았다. 

진짜 죽을 고생해서 온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버릴 수도 있는 상황.

이에 조조군 모두가 두려워했으나, 

조조가 높은 곳에 올라 적진을 세심하게 관찰하니 오환의 부대가 정돈이 되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속전속결로 기병 선봉대를 보냈다.





이 명운이 걸린 임무의 기병대장은 바로 '장료'.

그리고 장료는 정말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내니, 기병이 강한 이민족 무리를 마구 휘젓는 것도 모자라 끝내 오환의 우두머리 답돈을 포로로 잡아버리며 결국 답돈을 답돈을 참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승리 후, 복귀조차 쉽지 않았으니 애초에 곽가의 간언으로 속전속결을 위해 많은 보급을 지니고 간게 아니기에,

추위까지 일찍 닥친데다 2백리간 물도 없고 군중에 먹을 것이 부족해져 말 수천필을 죽여 양식으로 삼을 정도로, 복귀의 험난함 역시 전투만큼이나 어려웠다.

조조가 원정에서 돌아온 뒤, 오환 원정에 반대한 자들이 누구인지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 이유를 몰라 두려워했으나 오히려 조조는 이들 모두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며 말했다.




"내가 원정을 행한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요행을 바란 것으로, 비록 성공했으나 이는 하늘이 도운 것으로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없소.

그대들이 간한 것은 오히려 만전의 계책이였기에 이에 상을 내리니, 앞으로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마시오"


4. 하북평정

뜻하지 않은 조조의 기습으로 다시 세력을 잃게된 원상과 원희 형제.



(원상, 원희 형제의 도주로- 중원의 중심에서 어느새 요동반도까지 몰리게되었다.)

다시 오환의 무리들과 여러 호족들을 이끌고 반중앙 세력 '요동'으로 달아났는데, 

그 무리가 아직도 수천기에 이르렀으니, 재기의 불씨는 아직 죽지않았다.

당시 요동의 태수 '공손강'은 멀다는 것을 믿고 조조에게 복종하지 않았는데, 어떤 이가 조조에게 말했다. 




"이 기세를 몰아 정벌을 지속한다면, 원상형제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조조가 말했다.



"나는 바야흐로 공손강이 원상, 원희를 참수해 그 수급을 보내오게 할 것이니, 군사들을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소"

한편, 계속 패배하여 기주-유주-요서-요동으로 지속된 도주에도 원상의 근성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세력을 몽땅 잃고 요동으로 도망가는 와중에도 조조와 싸울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

원상이 원희에게 말하길




"지금 막 요동에 도착했으니, 공손강과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될 것 입니다. 

그때를 노려 형과 힘을합쳐 그를 치면 요동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손강 역시 자신을 대신하여 조조를 막아줄 완충지역들이 싸그리 사라진 상황에서 조조의 침략을 불안해 하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공손강 역시, 원상의 무리가 망명해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에 공손강도 마음속으로 생각하길,

'지금 원씨 형제들을 죽이지 않으면, 국가(한나라)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원씨와 공손강의 살벌한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미 접견 자리에서 복병을 숨겨둔 공손강이 한 수 빨랐으니, 재빨리 원상 형제를 포박하여 얼은 연못위에 앉혔다.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원상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뱉으니 이 말이 걸작이다.

"죽지 않는 동안, 추위를 견딜 수 없으니 자리를 마련해줌이 어떨지?"

이에 어이가 없어진 공손강이 그를 꾸중하며 형제를 참하여 그 수급을 조조에게 보낸다.

한편, 조조의 예측대로 공손강이 목을 보내오자 제장들이 조조에게 물었다. 




"공이 돌아오자, 공손강이 원상 원희를 참수해 수급을 보내왔으니 어쩐 일입니까?"

조조가 말했다.



"공손강이 평소 원상 등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내가 급히 공격하면 서로 힘을 합칠 것이고 느슨히하면 서로 도모할 것이니 형세가 그러했소."

그렇게 원상을 끝으로 4대가 삼공의 직을 지낸 한나라 최고의 명문가 원씨가문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원소를 꺾은, 원숙미 넘치는 조조를 상대로 끈질기게 괴롭힌 원씨가문의 마지막 후계자 원상의 죽을 때 나이는 고작 20대초반에 불과했다.(고작 20살, 21살정도로 추정...) 

삼국지 연의속에서 그려진 하북정벌과는 다르게 실제로 조조의 하북정벌은 자신의 생명을 수차례나 위협하는 상황이 여러차례 있었고 찢어진 원소의 세력들이라지만 나이가 어린 원상조차 만만치 않았다.

조조가 하북을 완전히 장악하기 까진 원소 사망 이후로도 5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며 특히 이 짤막한 오환정벌은 중국 역사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데,

북방민족의 정리로 훗날 이민족에 의해 중국이 찢어지는 5호 16국의 도래 시기를 1세기 가량이나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조조의 행적도 실제로 조조는 모두 목숨을 걸었고 죽을 고생끝에 승리를 쟁취했다는 점에 난 항상 감명을 받는다.